[설교노트] 창세기 1:26-27 하나님의 형상대로 (1)

성서는 무엇에 관한 책이라 할 수 있을까? 방대한 양의 성서를 한 마디로 요약하는 것은 의미없는 시도일 수 있지만, 굳이 요약해보자면 나는 “하나님과 사람에 관한 책”이라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이를 창세기 1-3장에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실, 굳이 성서를 자세히 들여다 보지않아도, 성서는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것을 읽는 것은 사람이니, 성서는 당연히 “근본 저자이신 하나님”과 “독자인 사람”과 관계된 책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아무튼 성서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담고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지만, 우리가 성서를 읽을 때에 끊임없이 찾고 질문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라고 생각한다. 필자가 생각하는 창조 이야기의 중심 내용을 요약해 보자면,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주되게 “창조주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에 대해 무게를 두고 있다면, 2-3장의 창조 이야기는 “피조물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주제를 무게있게 전달하고 있는 것 같다. 즉, 창세기 1장과 2-3장은 각기 다른 관점에서 창조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한 두 주제가 가위 자르듯이 기계적으로 나누어지는 것은 물론 아니다. 창세기 1장의 본문이 주로 “하나님의 창조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이번 글에서 다루는 창세기 1:26-27에서 볼 수 있듯이,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이 무엇인지를 짤막하지만 매우 인상깊게 소개하고 있다. 창세기 1:26-27을 올바르게 이해할 때에 창세기 2-3장에 나타난 “인간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더욱 명확히 이해할 수 있다.

일단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인간의 본질적인 속성에 대해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서 주변 세계가 인간 존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성서를 태동시킨 이스라엘은 고대 근동 세계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계시)이 사람을 통해 전해지고, 사람의 말로 옮겨질 때에는(성서), 당시의 문화와 환경에 영향을 받았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서는 고대 근동의 문헌들의 일방적인 영향을 받았다기 보다는, 오히려 고대 근동의 사상을 하나님을 믿는 신앙 안에서 교정하고 변혁시켰다. 따라서 성서를 고대 근동의 유사한 문헌들과 비교해 보면 성서가 내포하고 있는 독특성과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하는 것은 “인간은 왜 창조되었는가?”이다. 이 질문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 뿐만 아니라 고대인들에게도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Joshua Berman은 성서에 나타난 평등주의를 서술하는 그의 책 Created Equal에서 기원전 17세기부터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창조 신화 아트라하시스(Atrahasis)와 성서의 창조 신화를 비교하면서 메소포타미아와 성서의 인간관이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를 비교하고 있다.***

메소포타미아 종교는 기본적으로 다신교이며, 여러 신들의 존재를 언급하고 있다. 아트라하시스 신화 가운데 인간 창조 부분은 여러 신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하층민이었던 이기기(Igigi) 신들의 노역으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이들은 수천년간 논에 물을 데기 위해  중노동에 시달리다 급기야 대규모 파업을 단행한다. 이들은 자신들을 고용한 신 엔릴(Enlil)의 집을 포위하고 위협하기까지 한다. 이런 때에 엔릴은 최고위급 신 엔키(Enki)에게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이 요구를 듣고 엔키 신은 이에 대한 해결책을 아래와 같이 제안하고 채택한다.****

에아는 말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의 형제] 신들에게 말했다.
“그들의 책임에 우리가 어떤 비난을 할 수 있는가?
“그들의 강제노동은 무거웠고 [매우 비참했다]!
“매일 [ ]
“부르짖는 소리[는 컸으며, 우리는 소란스런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벨렡-일리(Belet-ili), 산파]가 출석해 있다.
“그녀에게 인[간, 사람]을 창조하게 하자.
“그에게 고삐를 씌우자 [],
“그에게 고삐를 씌우자 []!
“[사람에게] 신들의 고[된 일을 알게 하자]

즉, 메소포타미아의 인간 창조 신화에 따르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신들의 고된 노동일을 떠안기 위해 창조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최고 신의 시중을 드는 “산파신”에 의해 창조된 존재이다. 그렇기 때문에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 왕이나 귀족과 같은 특별한 지위를 가진 사람들 외의 평민들이나 노예들은 평생동안 고된 노동일을 하는 것이 이들의 삶의 목적이었고, 그렇게 비참한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성서는 이와는 좀 다른 인간의 정체성을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다. 인간은 부차적인 “산파신”과 같은 신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오직 한 분이고,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기록은 더욱 놀랍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צלם)”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이다!


*창세기 1장과 2-3장이 공통되게 창조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용어나 창조 순서 등이 다르게 나타나게 “보이기” 때문에 비평적인 학자들은 두 이야기의 본래 저자가 다르다고 주장해왔다. 즉, 다른 두 전통의 창조 이야기가 존재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이와는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데, 이 문제에 관해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앞선 글 가운데 “하나님의 영? 하나님의 바람?을 참고해 보라.

***Joshua Berman, Created Equal (New York: Oxford, 2008), 19-23; J. Berman은 필자의 현재 지도 교수이기도 하다. 필자가 번역하고 있는 이 책이 금년 중순 쯤 출간될 예정이다.

****”Atrahasis,” fragment, 11. a-k; 아래는 Benjamin R. Foster, From Distant Days: Myths, Tales, and Poetry of Ancient Mesopotamia (Bethesda, Md.: CDL Press, 1995), 54-55의 영어번역을 한글로 옮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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