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노트] 제물

이 그림은 프랑스의 화가 샤갈이 그린 “이삭 제물”이라는 작품입니다. 이 그림에는 샤갈만의 특이한 색체와 구성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샤갈은 벨라루스 게토의 유대교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유대적인 성경 이해를 가지고 있었고, 독특하게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기도해서 기독교의 이미지 역시 그의 작품에서 다양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샤갈 스스로는 종교적인 성향을 강하게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림에서 하단 중앙 부분에 칼을 들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그려져 있습니다. 샤갈의 작품에서 노란색은 신성한 색을 의미하고, 붉은 색은 신성화되는 존재를 표현할 때 주로 사용됩니다. 즉, 붉은색은 새로운 깨달음을 표현하는 색채입니다. 이 그림에서 표현되는 이삭은 어린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에 순종했던 그의 신성한 모습을 표현하는 것 같습니다. 칼은 든 아브라함은 절망의 끝에서 그를 부르는 천사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아브라함은 자신의 시험의 의미를 깨닫게 되고 알듯 모를듯한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샤갈의 태생의 배경이었던 19세기말 게토는 유대인들을 향한 유럽인들의 핍박이 상징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여기서 고난 받는 이들의 비명을 조명하고 있습니다. 왼편 나무 왼쪽에 절규하고 있는 이삭의 어머니 사라, 그리고 오른편 위쪽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안고 울고 있는 마리아, 이들은 우리 삶의 실제적인 고통을 대변하는 이들을 상징합니다.

이는 신앙이라는 것이 그리 낭만적이지 않은 것임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천국을 소망하나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고난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는 그 고난에 처한 이들의 모습을 바라볼 줄 아는 눈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 왼편의 작은 나무 아래에 수양이 있습니다. 언뜻봐서는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아브라함도 그것을 처음에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가 겪었던 시련이 결국 시험이었다는 것을 깨달은 이후에야 아브라함의 눈이 떠져서 수양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고난을 경험해도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표정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있습니다.

모리아산에서의 사건은 아브라함의 순종으로만 끝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샤갈은 그 해석을 기독론에까지 확장시킵니다. 바로 그림 상단에 있는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입니다. 아브라함의 사랑하는 독생자 대신, 하나님의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를 대신 우리를 위해 죽게 하신 것입니다.

막1:11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번 주는 고난 주간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그냥 살아가는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현실에 발을 붙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야 하는지 알라고 성경은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더라도 이 질문을 놓치지 않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겪는 아픔과 고난은 신의 저주가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입니다. 아브라함도 이삭도, 그리고 예수 스스로도 겪었던 고난입니다. 그 고난 때문에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고 자신을 비하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고민하는 지체가 있다면 함께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