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나의 백성, 나의 하나님

룻기 1:16

나의 백성, 나의 하나님

오늘부터 몇 달 동안 다윗에 대한 이야기를 전반적으로 해 보려고 합니다. 다윗은 성경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인물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메시아의 표상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이 다윗의 자손이며, 메시아로 이 땅 가운데 오셨음을 부분을 집중해서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첫 왕국의 역사를 연 인물이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신실한 왕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다윗처럼 문제의 인물도 없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말이지만 성경은 신앙적으로 혹은 세상적으로 완벽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흠이 많고 실수도 많은 부분들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다윗 역시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이런 다윗의 모습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완벽주의적인 신앙의 모습을 요구하시는 것은 아님을 또한 깨닫게 될 것입니다.

다윗은 정치적인 지도자였습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그의 정치적이고 세상적인 업적이 아니라, 그의 신앙의 문제, 그리고 이와 관련된 윤리적인 문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의 삶과, 성경에서 말하는 삶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 둘은 결국 타협할 수 없는 것인가. 이 문제 역시 우리가 고민하게 될 부분입니다.

오늘 우리가 다윗의 삶에 대해 나누면서 시작할 본문은 바로 룻기 입니다. 룻은 다윗의 증조 할머니 격이 됩니다. 그러니까 룻의 손자가 이새가 되는 것이고, 그 이새의 아들이 다윗이 되는 셈입니다. 다윗의 조상들 가운데에서는 그래도 유대 혈통을 가진 이름난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유대인도 아니었던 모압 여인 룻에 관한 이야기를 따로 떼어 책으로 엮었습니다. 그만큼 모압 여인이었던 룻을 굉장히 중요시여겼다는 의미입니다. 룻은 메시아의 표상이 되는 다윗이 이 땅에 태어나는 과정 가운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했던 여인입니다. 룻기를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이들을 통해서 그의 일을 행하시는가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윗을 이해하기 위해서 룻을 먼저 읽어가는 것이 순서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룻기에 보면 하나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나타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언급되지만 모압 여인었던 룻이 어머니를 끝까지 따르겠다는 의리의 맹세 표현이지 그녀가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을 가졌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런 측면에서 룻기는 참으로 특이하고 흥미로운 책입니다.

룻기는 사사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라고 하면 여러분들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사사시대는 굉장히 혼란스러운 시대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자신들이 살고 싶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이민족들의 침략이 있을 때 고통가운데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 구원자인 사사들을 보내주셔서 구원해 주셨지만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렸던 망각의 악순환을 상징하는 것이 사사시대입니다. 그래서 사사기를 읽으면 마음이 한편으로 무거워 집니다.

그런데 룻기의 첫 구절에서 그 이야기의 배경을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질서와 신앙이 사라지고 혼란스러움과 망각만 가득했던 시대가 사사시대였던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메시아와 같은 지도자를 이 땅 가운데 보내실 계획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정작 이 책 가운데에서 거론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다른 책들과 룻기가 차이가 나는 특징입니다. 유사한 책이 에스더가 있습니다.

어쩌면 이런 책들이 상정하는 바는 오늘날의 우리의 삶의 모습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큰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가시적이고, 직접적으로 느끼는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차라리 하나님께서 꿈속에서라도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뭔가 말씀을 해 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내 삶 속에서 그런 하나님을 경험하기란 매우 어렵습니다.

룻과 나오미, 그리고 보아스가 겪는 일들에서 하나님이 이렇게 하셨고, 저렇게 만드셨다 그런 언급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저 이 세 사람이 그 때, 그 때 어떻게 대처하고 어떤 신념에 따라서 행동하고 있는가만을 담담하게 이야기할 뿐입니다. 룻기는 먼저 우리에게 하나님 보다는 사람들에 집중하기를 요청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룻기를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주제는 바로 타인에 대한 자비의 마음입니다. 룻기의 첫 머리는 엘리멜렉이라는 사람과 그의 부인 나오미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들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때에 베들레헴에 큰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엘리멜렉의 가족들은 모압이라는 땅, 오늘날 요르단 땅으로 건너갑니다. 그러나 그 땅에서 나오미의 남편이 먼저 죽습니다. 그래도 두 아들들은 모압 땅에서 모압 여인들과 결혼해서 그럭저럭 삶을 꾸려 나갑니다. 모압 땅에서의 시간이 약 10년 정도가 흘러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비극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들마저도 죽고, 나오미와 며느리들만 남게 되었습니다.  

삶이 점점 더 꼬여만 가는 것입니다. 나오미라는 이름의 뜻이 “즐거움”이라는 말입니다. 나오미가 나중에 베들레헴으로 들어갔을 때 사람들이 나오미 맞냐고 물으니 나오미가 자기를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자신을 마라라고 부르라고 합니다. 이 말의 뜻은 “괴로움”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토록 괴롭게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룻기는 초반부터 우리의 역설적인 삶에 대해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빵의 동네”라는 의미를 가진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고, “즐거움”이라는 의미를 가진 나오미의 삶에는 괴로움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룻기가 초반에 보여주는 신앙인의 역설입니다. 나는 하나님 잘 믿고, 그래도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왜 이런 문제들이 나를 괴롭게 하느냐 입니다. 나오미는 많은 신앙인들의 고민을 대변해주는 그러한 인물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나오미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의 곁에 바로 룻이라는 모압 여인,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아들이 죽은 이후의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관계는 얼마나 어색하겠습니까? 둘 사이에는 어떠한 연관고리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오미도 그의 두 며느리, 룻과 오르바에게 알아서 각자 갈 길로 가라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룻은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서처럼 끝까지 시어머니를 따르겠다고 이야기합니다.

룻은 무슨 마음일까요? 룻 역시 사정은 딱합니다. 남편이 죽은 상황에서 유대인 시어머니를 따라, 언어도 익숙하지 않은 가보지도 못한 동네에 가서 삶을 산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그것도 여인의 몸으로 말이죠. 룻은 그저 시어머니를 향한 긍휼의 마음으로 따른 것입니다. 쉽게 말해 시어머니가 인간적인 마음으로 딱해 보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만난 인연인데 룻은 시어머니와 끝까지 함께 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룻기는 이렇게 룻의 시어머니를 향한 의리의 마음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마음이 룻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신앙은 공식에 따른 기계적인 것이 아닙니다. 뭔가 신앙적인 열심을 투입한다고 금방 결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우리의 삶의 실제는 어쩌면 역설 그 자체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우리가 인간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무엇인가, 여기서부터 룻기는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단순히 개인의 이익의 관점에서 인간을 대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룻기는 여기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바로 조건 없는 긍휼과 자비의 마음입니다. 이는 나아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대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자비를 베풀고 있으니, 우리도 그리하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할 메시아의 탄생 그 자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인간이 인간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 말씀에서 룻은 어머니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이 안에는 다른 인간을 향한 헌신과 사랑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몸담은 공동체에서도 우리가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 일 하나 잘 끝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눈을 들어 주변 사람들을 돌아봅시다. 거기에서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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