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율법과 인애

19. 5. 19. 청년부

룻기 3:13.

율법과 인애

룻기 2장의 첫머리에서는 보아스에 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보아스는 나오미의 남편이었던 엘리멜렉의 친족으로 소개가 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친족 보아스가 중요하게 나타나는 이유는 토지에 대한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레위기 25장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이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토지를 팔게될 경우에 이와 관련하여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만일 네 형제가 가난하여 그의 기업 중에서 얼마를 팔았으면 그에게 가까운 기업 무를 자가 와서 그의 형제가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위기 25:25)

즉, 어떤 사람이 어쩔 수 없이 토지를 팔게 되면 그 친족이 대신 그 땅 값을 대신 물어주라는 것입니다. 경제적인 기반을 잃어버린 구성원들이 생겼을 경우, 주변의 가까운 친척들이 이들을 지켜줘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경제적인 정신입니다. 보아스가 이들의 친족이었다는 언급은 그가 나오미 가족의 땅을 구입해서 나오미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 주어야 하는 친족들 가운데 한명이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나중에 우리가 보게 되겠지만 보아스는 이들을 책임져야 하는 1순위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땅을 구입한다는 말은 단순히 그들의 땅을 자신의 소유로 삼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로 비유하자면 내가 땅을 구입은 하되 등기부 등본상 소유주는 그대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특정한 가문의 재산이 계속해서 끊이지 않고 존속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토지를 구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보아스가 룻의 가족의 땅을 무르는 것과 더불어 룻과 결혼을 하는 장면을 룻기에서 보게 됩니다. 우리는 성경의 이야기가 고대의 이야기임을 알아야 하고 도덕 관념이 오늘날과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옛 고대 사회에서는 여성들은 아주 약자중에 약자였습니다. 지금은 이혼이라는 것이 흔한일이 되어 버렸지만 고대 사회에서 이혼을 하거나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여자의 상황은 비참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친정에서도 이런 여성들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어떤 나라들 가운데에서는 명예 살인이라는 것이 있어서 이런 문제를 안고 있는 여성들을 가족들이 살해하는 끔찍한 일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런 여성들을 지켜주기 위한 법도 존재합니다. 바로 형사취수라는 제도입니다. 형제들이 여럿 있는 가운데 큰 형이 불상사로 죽게 된다면 그 남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의 윤리 관념으로 보자면 이해되지 않는 풍습이지만 당시 사회에서는 이 제도가 위험한 상황에 놓여 있는 그 여성을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렇게 형수와 결혼해서 낳은 자식일 경우 그 자식은 새로 결혼한 자의 자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는데에 있습니다. 옛 사회에서 자식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가문이 그 자녀들을 통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결혼을 해서 가족을 이루고 가솔들을 먹여살려봐야 자신에게 돌아오는 실제적인 이익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이 제도 또한 그 여성과 결혼하는 당사자에게는 불리한 제도였습니다.

룻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룻과 보아스가 아이를 낳았을 때, 사람들은 나오미에게 축복의 말을 전합니다. 그 태어난 아들은 보아스의 아들이 아니라 나오미의 자손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입니다. 끊길 위기에 놓였던 엘리멜렉의 가문이 보아스를 통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는 것이고, 새로 태어난 아들 오벳은 다윗의 할아버지가 됩니다.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되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의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였더라 (룻기 4:17)

이러한 제도들의 중요성은 단순히 과부 신세가 된 한 여성을 구제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에 있습니다. 그냥 살게 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여성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권리까지도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반복해서 강조하는 것이지만 인간 창조의 원리와 관계되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재이기 때문에 그만큼 그 권리를 인정해주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권리는 그냥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이들의 헌신과 희생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룻기에서는 바로 보아스가 이 역할을 하는 것이고, 보아스가 이러한 자기 희생의 결단을 하는 원동력은 바로 룻이 자신의 시어머니에게 보여주었던 헌신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의 경제 시스템은 경제적 악순환이 반복해서 일어나 자유를 잃어버린 노예들을 양산했다면, 성경과 룻기에 나타난 경제 시스템은 약자들을 보호해주는 경제의 선순환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은 보아스가 룻에게 자신이 나오미의 기업을 책임져 줄 것이라 이야기하는 장면입니다. 룻은 나오미의 이야기를 듣고 술에 취한 보아스의 방에 몰래 들어가 그 발 밑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보아스가 말하는 장면으로 보건데 보아스는 젊지도 그리 외적으로 매력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룻은 자신이 맘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나름대로 자신의 가족을 다시 이룰수도 있었지만 시어머니 나오미의 가문을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아스는 룻의 그런 마음을 알고 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나오미의 기업을 유지시키는 책임을 가진 1순위는 아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감당하려 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람이 정식으로 자신의 책임을 회피한다면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가족의 기업을 맡아준다고 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고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이야기는 앞으로 이스라엘이 나가야 할 방향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율법의 정신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가치가 지배하는 세상을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기적인 유전자의 지배를 받는 기계적인 존재로 머물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세상의 과학자들은 우리의 이타심 마저도 공동체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지만, 우리는 이것이 하나님의 속성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 그것을 열심히 계속해서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우리가 다른 이들과 이 세상에 어떤 선한 영향을 줄 수 있느냐를 중요하게 고민해 보아야 합니다.

제가 선교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그 곳에 가면 우리 각자가 갖고 있는 능력이 절대로 적지 않음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만 강조되는 우리의 사회는 아무리 많은 능력도 잘 인정해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도움이 별로 되지 않는 존재라고 오해하게 됩니다. 하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가진 능력과 힘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마음으로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나를 이루는 재원이 될 수 있습니다.

나오미, 룻, 그리고 보아스는 평범한 사람들이었습이다. 이들이 이러한 율법의 정신대로 살아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위한 중요한 지도자를 이들을 통해 보내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를 함께 이루어 나가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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