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한나의 기도

19. 5. 26. 청년부

사무엘상 1:10-11

한나의 기도

지난주까지 룻에 대한 말씀을 나눠 보았습니다. 룻의 핵심을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나왔던 등장인물들은 카리스마 있는 능력자나 정치적인 지도자들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삶의 굴곡 가운데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가치를 삶 가운데 실천하려고 했고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런 자들을 통해 이스라엘의 참된 지도자를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다윗의 길을 예비했던 사무엘의 이야기를 나눠볼 것입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에 왕이 세워지기 전 마지막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사울과 다윗 두 왕을 세운 인물이기도 했기 때문에 킹 메이커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이스라엘의 왕국 시대를 열었던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이기도 하고, 정치와 종교에 직접 관여했던 마지막 지도자이기도 했습니다. 왕국 시대가 시작되고 난 이후, 왕들은 종교적인 문제에 관여하지는 않았습니다. 아무튼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왕국 시대를 열었던 정치적인 전환점을 만들어 냈던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 사무엘은 특별한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룻기와 마찬가지로 사무엘이 이 땅에 태어나기까지 성경은 평범한 한 가정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1에서 사무엘의 아버지 엘가나에 대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는 마지막 부분에 숩이라는 사람의 현손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숩은 역대상 6:35에 따르면 레위 자손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에서 유일하게 땅을 부여받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람들은 다른 이스라엘 지파들 사이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야 할 의무를 가진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사사기에 나타난 혼란스러운 이스라엘의 상황은 결국 레위 지파 사람들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이들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타락한 결과 이스라엘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과연 성경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가치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인가. 많은 신앙 공동체들이 결국 세상의 가치를 추구하면서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쓰임받는 사람은 우리가 서야 할 자리에서 묵묵히 하나님의 가치를 이 땅에서 실현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룻기에서 우리는 그것을 보았고 사무엘서에도 이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엘가나는 평범한 레위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어떤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1:3에 따르면 그는 매년 실로에서 제사를 드렸던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땅을 분배받은 이후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였던 성막은 실로에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광야 시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와 항상 함께 지냈지만, 땅을 분배받은 이후 일부러 성막을 찾아와야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에 세 번 성소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유월절, 칠칠절 그리고 초막절입니다. 유월절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켰던 날이고 칠칠절은 율법을 수여해 주신 날이며, 초막절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묵상하는 날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그 원동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이었다는 사실을 순례를 통해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로 순례의 근본 이유입니다. 성소에서 제사 드리는 것은 그 다음 문제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교회에 안 나오면 찝찝해서가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내 삶의 주인으로 인정하기 때문에 그 마음으로 교회에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선포되는 메시지를 듣고 다시한번 내 삶의 방향과 목적에 대해 확증하고 확인하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신앙 생활의 목적을 다시 한번 되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엘가나가 매년 실로에 찾아왔다는 성경의 기록은 그가 지위가 그리 높은 레위인은 아니었지만 신실한 사람이었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에게 두 아내가 있었는데 브닌나와 한나라는 사람입니다. 브닌나는 아이가 있었지만 한나에게는 아이가 없었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 받은 자로 치부되곤 했습니다. 쫓겨나는 것은 일상 다반사였겠지요. 그러나 엘가나는 한나를 보호했고, 오히려 이 때문에 브닌나의 미움을 많이 받아 한나는 더욱 큰 마음의 어려움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 한나는 슬픈 마음에 실로의 성소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오늘의 말씀에서 읽은 것과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올립니다. 그런데 당시 성막의 제사장이었던 엘리의 반응이 재미있습니다. 엘리는 한나가 술 취해서 중얼중얼 거리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즉, 당시 성막에서 기도하는 것은 일반적인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성막은 그저 제사의 장소였지 기도의 장소는 아니었던 것이고, 개인이 하나님께 직접 기도하는 것도 흔한 일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나의 기도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제사는 제사장만이 집례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기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진실한 그 고백을 하나님께서 직접 들으심을 성경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전의 종교적인 모습이 엘리트 중심이었다면 한나의 기도를 기점으로 낮은 자들과 평범한 자들을 통해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중에 보게 되겠지만 사사기에 나타난 레위인들의 타락상과 마찬가지로 당시 성막 제사를 집례했던 엘리와 그의 아들들이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들이 타락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제 평범한 자들을 통해 일하시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사사 시대에 레위인들이 타락하니 룻이나 한나와 같은 여인들을 통해 일하셨고, 나중에 왕국 시대 때 왕들이 타락하니 왕정을 몰락시키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실하게 따르는 백성들을 통해 일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시대를 민감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좋은 리더십이 본이 되는 시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시대에 우리는 어떤 기도를 해야 할까요? 한나는 자신의 삶의 문제를 놓고 기도했지만 그 기도는 자신의 유익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그 열매를 하나님 앞에 드린다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이삭을 드리려고 했고, 한나가 귀한 아들을 하나님께 헌신하는 사람으로 드렸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해 더욱 크게 이들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내 기도의 우선순위를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내 현실적인 문제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가 해결되었을 때, 내가 그것을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구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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