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돌아온 법궤, 그리고 회복

오늘의 말씀은 이전에 나누었던 사무엘의 말씀과는 달리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법궤가 이스라엘의 지경으로 돌아오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범위를 빼앗았던 블레셋 족속에 관해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블레셋 족속은 본래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에게 문명, 즉 오늘날 그리스 문화권에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오딧세이라는 이야기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당시에는 그리스 지역에 많은 군소 도시 국가들이 세워져 있었고, 그들 사이에는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세력 싸움에서 밀리면 다른 지역으로 쫓겨나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블레셋 족속은 당시 지역에서 패권을 잃어버리고 이 지역에서 쫓겨난 자들로 생각됩니다.

우리가 고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가를 알려면 발굴 작업을 통해 그들이 사용했던 많은 유물들을 분석해 봐야 합니다. 그 사람들의 정체성을 가장 확실하게 알려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토기 조각들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요리들을 사용해 왔고, 그것을 통해 그 사람들의 문화적인 정체성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의 지경에서 발견된 이런 유물들은 에게 문명의 특징들을 잘 모여듭니다.

에게 문명은 일찍이부터 상업과 금속 제련 기술, 그리고 항해술이 발전한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블레셋 족속은 이런 발전된 기술을 갖고 가나안 땅에 들어 왔을 때, 가장 비옥하고 좋은 땅인 해안 쪽에 정착해서 살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스라엘 지중해 해변 지역은 경제 중심지이자 발전된 중심 도시들이 있는 곳입니다. 반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점령하기는 했지만 아직 국가의 틀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황이었고, 주로 사람들이 많이 살지 않았던 중앙 산지쪽에서부터 정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안 쪽으로 진출하려고 시도하기는 했지만, 이 강력한 블레셋 족속을 몰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나중에 다윗 이야기에 나오는 골리앗 역시 블레셋 족속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사사시대와 왕정시대는 문명사적으로 볼 때, 청동기 시대에서 철기 시대로 넘어가던 때였습니다. 이 시대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가 보다 더 발전된 금속 제련 기술을 갖고 있느냐였습니다. 어떤 온도에서 금속을 녹이고, 어떻게 식히느냐에 따라 금속의 강도가 정해지는 것인데, 이것이 참으로 까다로운 일입니다. 사무엘상 13:19-22을 보면 블레셋 족속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제적 차이를 아래와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19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20.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각기 보습이나 삽이나 도끼나 괭이를 벼리려면 블레셋 사람들에게로 내려갔었는데 21. 곧 그들이 괭이나 삽이나 쇠스랑이나 도끼나 쇠채찍이 무딜 때에 그리하였으므로 22.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즉, 나중에 사울 왕이 세워진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속 제련 기술을 갖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소에도 농기구 조차 제대로 수리를 할 수가 없어서 블레셋 땅으로 가서 수리를 해야만 했다는 것입니다. 위 구절을 봐도 블레셋과 전쟁을 할 때, 제대로 된 금속 무기를 가진 사람은 왕이었던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 뿐이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이스라엘 백성들은 돌이나 나무 막대 같은 것으로 싸웠을 것입니다. 그러니 객관적인 전력차에서 보면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격차는 엄청났던 것입니다.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라는 책이 있는데요, 이 책은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의 역사는 바로 각자가 처했던 환경에 의해 좌우지 되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역사 속에서 서구 문명이 가장 급속도로 발전한 이유는 재배하기에 알맞은 작물들이 유럽에 많이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농업혁명이 시작되자 사람들은 정착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이로부터 사회 제도가 시작되고 계급이 발생하면서 되었습니다. 이런 사회를 지탱하기 위해 군사력과 농업 기술이 더욱 발전하게 되고, 도구들도 발전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럼으로 발전된 무기 체계가 유럽에서 먼저 발달을 하게 되었고, 높아진 인구밀도로 인해 생겨난 전염병과 이에 따라 생긴 면역력은 이들이 다른 지역을 침략하는데 유용하게 활용된 생물학적인 무기로 작용했다는 것입니다. 이는 스페인이 소수의 병력으로 마야 문명을 완전히 말살시킨데에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블레셋은 전형적으로 풍요로운 생산이 중심으로 발전된 문명을 대표하며, 이에 반해 이스라엘은 아무런 안정적인 기반도 갖추지 못한 뒤떨어진 사회를 대표합니다. 마치 스페인과 마야 문명의 충돌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이 충돌 사이에 법궤가 있습니다. 사무엘상 4장에서 이스라엘은 법궤를 빼앗겨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는 두 문명의 충돌 가운데에서 풍요와 기술이 기반으로 발전한 블레셋의 승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법궤는 전혀 이상한 방식으로 블레셋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바로 블레셋 지경 안에서 질병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제러드 다이아몬드는 질병 역시 발달된 문명의 힘을 이루는 하나의 요소라고 보지만 그 자체는 자기 파괴적인 것입니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 토지를 착취하고 노동력을 집결 시킨 결과가 바로 전염병이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 문명의 승리라는 것은 자기 파괴적인 본질을 보여줍니다. 누군가를 없애버리고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 승리의 본질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사고 방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블레셋 지경 가운데 법궤를 가져왔을 때, 그 법궤는 인간의 욕망으로 인한 자기 파괴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물리적인 법궤가 그 지경에 왔다고 해서 하나님이 그들의 편에 서시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삶의 철학과 방향이 어떻게 설정되어 있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법궤가 이스라엘로 돌아온 이후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법궤 자체가 이스라엘로 돌아왔다고 해서 이스라엘에 평화가 찾아오고 힘 있는 나라가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3절에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사무엘이 말하는 바알 신들과 아스다롯은 풍요의 신들을 의미합니다. 이기적인 풍요의 가치관에서 자유로워지고, 진정한 하나님의 나라를 회복하라는 것이 바로 회개의 본질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 파괴적인 문명의 위협에서 건져주시겠다는 것이 사무엘이 전달한 하나님의 메시지입니다.

그리고 이후 다시 블레셋과의 전쟁이 재개되었을 때, 이스라엘은 이전과 동일하게 블레셋 사람들을 두려워 합니다. 하지만 달라진 것이 하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드디어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이제 눈에 보이는 법궤가 아니라 진짜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무엇을 찾고 있습니까?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이런 세상과 싸워 이겨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여러분들 직장이나 학교를 다 그만두고 수도 생활을 하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 세상의 삶의 현장 가운데 있었습니다. 다만 우리가 어떤 일을 하던지, 세상의 방식이 아닌 하나님의 방식대로 성공했으면 좋겠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발견할 수 있었듯이, 다른이들이 여러분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의 가치를 발견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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