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노트] 사울의 제사

사울의 제사

사무엘상 13:13-14

우리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시대가 도래하기 전에 유럽에는 입헌 군주제 제도가 있었습니다. 입헌 군주제 하에서는 왕이 여전히 존재하기는 하지만 정치의 주도권은 시민들에 의해 선출되거나 뽑힌 의회가 가져가게 됩니다. 입헌 군주제 이전에는 왕정제도가 있습니다. 입헌 군주제는 왕정제도와 민주제도의 과도기에 해당하는 정치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 자연스럽게 민주주의가 꽃피운 나라에서는 이 입헌 군주제를 거쳐갔는데, 우리 나라는 갑작스레 왕정이 끝나고 일제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못했고, 갑작스럽게 독립과 뒤이어 민주화 과정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전히 우리는 여전히 왕정과 같은 권력의 절대화의 영향 가운데 있는 것 같고,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지도자를 그리워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데 왕정에서 입헌 군주제, 그리고 민주주의로 넘어가는 과정 가운데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중요한 정치 개념이 있습니다. 이는 비단 정치 영역에서뿐 아니라 기업 등과 같은 모든 형태의 조직들이 건강하게 유지되고 성장하기 위해 꼭 필요한 개념인데, 그것은 바로 “견제”입니다.

왕이 가지고 있었던 절대적인 권력을 시민들이 자신들에게로 가져오는 과정이 바로 민주화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는데, 어느 한 사람이 다시 권력을 송두리채 가져간다면 이러한 과정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한 권력에게 힘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다양한 조직들에 권력을 분할하게 됩니다. 이것을 현대 민주주의 제도에서는 삼권분립이라고 이야기 합니다. 행정의 최고 지도자가 법을 적용하는 문제에 간섭해서는 안되고 법을 적용하는 기관이 법을 만드는데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너질 때,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사울의 제사 이야기를 통해 바로 이러한 상황을 바라보게 됩니다. 사울은 본래 겸손한 자로 그 왕의 역할을 시작했지만 점차 자신의 의지가 앞서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스라엘과 블레셋의 군대와의 전쟁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에 말씀드린대로 이스라엘은 기본적으로 블레셋에게 열세의 위치였습니다. 그러니 블레셋과 맞설 때 마음이 두려워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어쩌면 이러한 위기 가운데에서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 리더의 역할이 참으로 어렵습니다. 사람들에게 눈에 보이지 않는 확신을 심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왕은 스스로가 백성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라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역할입니다.

바로 이 부분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해야할 중요한 역할입니다. 왕은 자기만의 판단으로 무엇을 결정해서는 안 되고 하나님의 말씀, 즉 율법을 기준으로 통치해야 하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민주주의 이전에 나타났던 입헌 군주제와 유사한 개념입니다. 왕은 자신의 권력의 한계를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고, 이를 왕에게 일개워 주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사울의 곁에 사무엘을 두었습니다. 사무엘은 제사장이면서 예언자입니다. 이런 사무엘이 근본적으로 갖고 있었던 역할은 사울이 잘못된 길을 가게 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스라엘을 통치할 수 있도록 때로는 책망하고 쓴 소리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후의 왕들에게는 예언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전쟁 가운데 두려운 마음이 더 컸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사방에서 포위해 오고 전쟁에 나가기 전에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왠일인지 사무엘은 오고 있지 않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점점 더 포위망을 좁혀 오자 두려움을 느낀 이스라엘 백성들은 탈영하기까지 합니다. 이런 상황 가운데 사울은 먼저 제사를 드립니다.

전쟁 전에 제사를 드린다는 것은 아주 거룩한 행위입니다. 누가 드렸던 것 간에 무슨 상관이 있느냐 어쨌든 사울이라도 그냥 나가서 싸운 것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고 갔으면 괜찮은 것 아니냐라고 생각해 볼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이 제사를 드리고 나서 미처 늦게 도착한 사무엘이 사울을 호되게 질책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왕위가 사울의 집안에서 떠나갈 것이라고까지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이 구절을 언뜻 보기에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왕과 예언자의 관계를 제가 말씀드린 견제의 개념에 비추어 보면 중요한 핵심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영역을 침범한 것입니다. 사무엘의 영역은 바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과 왕에게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법과 말씀에 구속되어야하는 존재인데, 사울이 사무엘의 영역을 침범했다는 것은 왕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를 정하겠다는 의지나 다름이 없습니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사울은 견제 기관을 없애려고 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을 그가 의도했는지, 아니면 두렵고 급박한 가운데 이런 일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것이 사울의 가문이 몰락하게 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이 한번 잘못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바로 내치시지는 않았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를 보다 보면 우리는 그가 스스로 무너지는 길을 택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지는 전투에서 사울의 군대는 블레셋 백성들을 물리치고 승리합니다. 14:23에서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전투 가운데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여기서 묘한 이야기를 합니다.

이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피곤하였으니 이는 사울이 백성에게 맹세시켜 경계하여 이르기를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사람은 저주를 받을지어다 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모든 백성이 음식물을 맛보지 못하고 (삼상 14:24)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적들을 추적하는 가운데 모두들 지쳤음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날때까지 음식물을 먹는 이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금식과 저주 선포 역시 종교적인 범주의 명령입니다. 여기서 사울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적들을 “자신의 원수”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사울은 그 전쟁을 자신의 전쟁으로 치부하고 있으며, 금식을 어길 시 저주를 받을 것이라 선포하는 사울의 모습이 나타나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하고 전쟁을 수행해 나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국 사울의 명령을 듣지 못해 어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후에 사울이 하나님의 뜻을 물었을 때 어떤 응답도 듣지 못하자 사울은 이 원칙을 어긴 이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되고,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울의 명령을 어긴 자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울의 자의적인 판단이 얼마나 파국적인 결말을 가져오는지 보여주는 예입니다.

사무엘이 사울의 가문을 저주했기 때문에 사울이 몰락한 것이 아니라, 사무엘은 사울의 성향을 깨달았고, 그것을 고치지 못하면 스스로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밖의 다른 왕과 같이 되고자 하였고, 스스로 판단 기준을 만들고 세상을 치리하고자 하였습니다. 그 결과 사울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의 기준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결정을 견제해야 함을 깨닫고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 나타나는 몰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아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그가 하나님 앞에서 바로 서지 못했고, 자신의 욕망을 견제하는 하나님의 법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삶 가운데에서 하나 하나 선택해 나갈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기준을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말씀이 우리의 삶을 견제해 나갈 때에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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