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

20.1.5. 청년부 설교
사사기 6:12
영웅

2020년 새해가 되었습니다. 올 한해를 시작하면서 함께 나누고 싶은 주제는 바로 “영웅”이라는 주제입니다. 아마 여러분들 “마블” 회사를 잘 아실 겁니다. 이 회사는 다양한 영웅 캐릭터를 만들어낸 만화와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이고, 또한 최근 수년동안 이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영화화해서 큰 흥행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들의 공통된 것은 바로 어떤 초능력을 지닌 영웅들이 등장한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이 이러한 소재의 영화나 애니메이션에 열광한다는 것은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이 시대에 이러한 영웅을 간절히 원한다는 것을 반증할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작품들에 나타나는 영웅들의 면면을 보면, 사실 사심이 별로 없습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오로지 이 세상의 정의를 실현하고, 어려움에 처한 많은 이들을 구하는데에 있습니다. 우리는 바로 이 사심 없는 영웅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초능력을 발휘하는 것 까지는 아니라 할지라도 영웅들과 같은 능력을 가진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사람들이 이 사회를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들이 온전히 이런 리더들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이들이 만화 속의 영웅과 같이 전적으로 사심없는 이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현실 밖에 있는 영웅들의 모습에서 희망을 찾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람들은 영웅과 같은 이들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자신이 영웅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별로 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자신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리더들만큼 내 능력이 미치지 못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이 시대의 영웅이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영웅이 되는 것 자체를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 영웅이라 하면 거창하고 좋은 것 같아 보여도, 실상 그 삶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노출되어야 하고, 그 만큼 내가 희생해야 할 것이 많아지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영웅이라는 주제를 이 두 번째 측면에서 접근해 보고자 합니다. 특히 성경에 나타난 소위 영웅들은 어떤 사람들이었고, 어떻게 이들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해 낼 수가 있었는가에 관해서 말씀들을 당분간 계속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영웅은 그리 거창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오늘 읽은 말씀의 배경에 나오는 기드온과 같이 엄청난 군사적 업적을 이룬 이도 있었지만, 작년에 우리가 나누었던 룻기에서 볼 수 있듯이 평범한 일상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이뤄나간 이들도 있습니다. 영웅이라고 해서 우리가 꼭 이 사회의 리더가 되어야만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하는 “영웅”은 우리 자신의 한계에서 용감하게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또한 우리 자신의 본래 모습이 무엇인지 깨닫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말씀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가 기드온에게 한 말입니다. 사사기 6장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미디안 족속 사이의 전쟁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습니다. 미디안 족속은 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가 위치하고 있는 아라비아 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광야를 터전으로 삼아 주로 유목활동을 했던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식량이나 가축들을 먹일 먹이가 떨어지면 주변의 정착민들을 공격하고 약탈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치러 올라와서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에 먹을 것을 남겨 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사사기 6:3-4)

사사기 6장의 배경은 바로 미디안의 이스라엘 약탈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그 와중에 기드온이 등장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사사기 6:11)

이것이 처음으로 기드온을 소개하는 구절입니다. 밀을 타작한다는 이야기는 밀 알곡을 분리하는 것을 의미하는데요, 타작을 할 때에는 반드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밀 타작을 할 때, 바람이 적당하게 불어줘야 무거운 밀 알곡은 떨어지고 껍질만 있는 쭉정이는 바람에 날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신이 밀 타작을 밖에서 하면 미디안 사람들이 와서 약탈할까봐 두려워서 포도주를 짜는 틀에서 타작을 했다고 합니다. 

포도주를 짜는 틀은 구덩이를 생각하면 됩니다. 포도를 발로 밟아 짜면 깊은 구덩이로 포도진액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이런 구덩이에서 밀 타작을 한다는 것은 정말로 말이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그만큼 기드온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사사기 6:12)

그 때 하나님께서 보낸 사자가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큰 용사여!” 겁장이에게 이 말을 했을 때에는 놀리는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한 이 말은 절대로 기드온을 놀리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 내에 잠재되어 있고, 억눌려 있는 영웅성을 끄집어 내라는 말입니다. 

신화에 대한 연구로 유명한 조셉 캠벨이라는 학자는 영웅들의 이야기에 관한 그의 책에서 심리적인 접근을 합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영웅 이야기를 읽고 다른 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유는 바로 우리 안에 억눌려 있는 심리적인 한계를 이 이야기를 통해 해소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적으로 저는 이 억눌려 있는 영웅의 모습을, 바로 하나님의 형상이라 해석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선하게 창조되었고, 많은 잠재력과 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이지만 이 사회가 우리에게 강요한 편견과 잘못된 가치 기준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다운 모습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혹은 이 사회가 기대하는 모습으로 점차 맞춰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앞으로 여러 인생의 목표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청년들에게 이러한 신앙의 가치는 큰 도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누히 강조하듯이 세상에서 원하는 가치는 신앙인의 가치와는 정말로 다른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모든 영웅들의 이야기 안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중요한 플롯은 바로 “분리”입니다. 영웅의 탄생은 바로 이 분리 없이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리스의 영웅 오딧세우스의 이야기는 떠남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성경의 아브라함 역시 그가 살던 곳으로부터 떠남으로 그의 믿음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떠남과 분리 없이는 영웅이 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도전이 우리 앞에 놓여져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나타난 영웅들의 삶의 모습, 그리고 성공과 실패의 모습을 앞으로 살펴보면서 우리 삶과 신앙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보게 될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들을 통해 우리가 본래의 모습과 하나님께서 지으신 선한 형상을 찾아가는 여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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