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헤론과 양화진

양화진의 존 헤론 선교사 묘역

1882년 조선이 미국과 외교조약을 체결하고 문호를 개방하면서 많은 외국인들이 이 땅에 거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미국의 개신교회들도 조선의 문이 열리면서 1885년부터 본격적으로 선교사를 파송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초기 한국 선교의 주도적인 역할은 미국 감리교회와 장로교회가 하였습니다. 장로교회가 파송한 의료선교사 중에 존 헤론(1856-1890)이라는 촉망받는 의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테네시 의과대학을 개교 이래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탁월한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안락함을 뒤로 한 채 아내와 함께 태평양을 건너 조선에 왔습니다.

조선에서 다양한 사역을 감당하던 그는 환자들을 돌보다가 1890년 전염성이질에 감염이 되었고 결국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죽음보다 더 슬픈 일은 조선을 향해 헌신을 다했던 그를 묻을 땅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당시 성(城) 안에 묘를 쓸 수 없다는 국법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고종은 성 밖으로 10리가 떨어진 당시 마포 나루터 인근의 땅을 묘지로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곳이 바로 양화진입니다. 그 후 이 땅에서 죽음을 맞이한 선교사와 그의 가족들은 양화진에 묻히기 시작하였습니다.그리고 그렇게 양화진은 성지(聖地)가 되었고, 한국교회의 초석을 놓은 하나님의 고귀한 일꾼들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존 헤론: 우리는 그를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원에 묻힌 최초의 사람이 아니라, 양화진을 탄생시킨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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