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5시의 자비

예전 동대문에 교회가 있던 시절, 새벽기도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 운전을 하고 교회를 가다 보면 교회 옆 골목에 일용직 근로자들을 태우기 위한 승합차가 여러 대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그 날 고용이 되어 차를 타고 떠나는데,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은 초조한 듯 골목길 한쪽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담배를 피우고 있었습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일용직 근로자들이 하루 일자리를 얻는 것은 정말로 절실하게 필요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20:1-16절에 보면 한 주인이 일용직 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위하여 길거리에 나갔습니다. 주인은 일자리가 필요한 그들과 임금 계약을 맺고 농장에 들여보냈습니다. 그들 중에는 일찍 온 사람도 있었고, 나중에 온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하루 일과 후 사건이 터졌습니다. 주인이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일당을 준 것입니다. 당연히 오래 일한 사람들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의 처사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들은 오늘 하루 일을 해서 가족들을 먹여 살릴 수 있게 해 준 주인에 대한 고마움보다는 자신들보다 더 적게 일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임금을 준 주인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주님은 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일까요? 사람이 살다보면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을 맞이합니다. 오늘은 내가 일찍 포도원에 들어갔어도, 다음 날에는 무슨 일이 생겨 늦게 올 수 도 있지 않겠습니까? 역지사지, 내가 어떤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면 우리는 보다 너그럽고 자비로워질 수 있습니다. 이 사회가 삭막해지는 이유는 불쌍함에 대한 공감과 자비의 마음을 잃어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은혜의 단비로 촉촉이 적셔 주셔서 타인을 향한 우리의 눈이 메마르지 않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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