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2)

안식일 준수에 관한 내용은 만나 이야기에서 또한 분명하게 드러난다(출16장). 하나님은 광야 생활을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를 매일 공급해 주셨다. 그러나 안식일에는 만나를 내리지 않으시고, 그 전날 이틀 치에 해당하는 만나를 거두라고 말씀하셨다(출16:23). 안식일에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고 온전히 안식만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안식일에 나와 만나를 찾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마도 이집트에서 오랜 시간 노예 생활 하던 습관이 있어 쉬는 방법을 몰랐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안식일을 어긴다는 것은 스스로가 노예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노하신다. 그러나 이는 이들을 벌하시기 위한 진노가 아니라, 여전히 노예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한 안타까움에서 나온 진노로 읽혀진다.

안식일은 결국 우리를 법에 얽매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와 해방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선물인 셈이다. 그러나 복음서를 보면 이 안식일마저 종교적인 권력을 행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됨을 우리가 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시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힐난한다. 이들은 안식일을 지키는 법 자체에 관심이 있지, 그 안에 새겨진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깨닫지 못했던 자들이다. 예수님께서는 토라를 두 마디로 요약하셨다. “하나님을 공경하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22:37-39)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곧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안식일의 법은 위에서 언급한대로 종된 우리에게 해방과 자유를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본질적인 안식일의 목적보다, 겉모습에만 집착했고, 문자 그대로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고 정죄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보란듯이 안식일에 사랑을 베푸셨고, 이를 통해 율법을 완성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문자 그대로 화석화된 안식일(토요일)을 성일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주일(일요일)을 지키며 새롭게 율법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안식일(주일),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귀한 존재로 지으셨다는 표식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날, 우리를 지으시고 살게 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묵상하고 그 뜻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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